어느 少女에게
박목월
너만한 소녀를 나도
사모한 일이 있었다.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햇빛에 날리는 옛날에.
지금 너처럼 그 소녀도
눈매가 고왔다.
찬물에 가신 수정구슬
포도빛 밤하늘의 별
물론 그 소녀도 이젠
나처럼 늙었으리라.
구질구질한 세상의 서리와 바람에
재빛으로 머리칼은 風化되고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음을
이제 나는 알고 있다.
기막히게 공허한 길에
바위는 바스러지고
하지만 그 소녀만은 내 안에
영원히 시들지않는 수선화水仙花
너만한 소녀들이 지내치며 웃는
눈매에 옆모습에 날리는 머리카락에
나의 소녀는 영원히 살아있다.
그것마는 시들지않는 水仙花
그리고 소중히 내가 간직한
이승의 마지막 햇빛 어린 양지.
사모한 일이 있었다. 옛날에.
너도 누구에게 영원한 존재가 될지 모르지만
서러운 것만이 영원한 이승에서.
시인은 일 년 365일 사랑하고, 365일 실연당하는 존재입니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운 연시가 탄생하는 거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