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난장판입니다. 지려고 마음을 먹고 둔 바둑처럼 온통 끊어졌지요. 믿었던 사람들은 등을 돌리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기대기 어려워졌습니다. 누굴 원망하겠습니까, 다 내가 자초한 일이지요.
시만 쓰고 산다는 오만에 빠져 그렇지 않은 세상을 모른 척했습니다. 글을 쓰는 친구들은 지난 대선 이후 우울증에 빠져 술타령 중이라지만, 저는 그 위에 김진태라는 괴물을 도지사로 앉히는 투표도 경험했습니다. 덕분에 다음 시집으로 준비 중이었던 원고를 폐기했지요.
그 원고는 하나의 연작시로 이루어진 시집이었습니다. 이 세상의 설움 받는 ‘을’들을 위해 대변하는 마음으로 썼지요. 하지만 선거 후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억울하거나 불쌍하지만은 않았습니다. 그들도 그들의 욕망이 있고 횡포가 있지요.
갑만큼 을도 충분히 악한 것입니다.
지금은 짐을 싸고 있습니다. 8월 한 달은 서울에 있는 연희 문학촌으로 갑니다. 연희동 전두환 씨 사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