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사람의 핸드폰으로 친구에게 전화하려다 전화번호가 생각나지 않아 멍해졌다. 혼자 사는 사람이 전화기를 두고 나오는 건 최악이다. 그보다 전화기를 잊어버리는 건 종말이다. 그 순간부터 본인을 증명할 수 있는 근거가 사라진다. 신분증명서, 은행 계좌, 아는 사람 연락처까지 모두 그 안에 들어 있다. 심지어는 모르는 곳을 여행할 때, 내비게이션은 물론 통역까지도 한다.
그런데 어떤 날은 내 전화번호도 쉽게 안 떠올라 혹 치매가 왔는지 의심하기도 한다. 기계가 사람을 바보로 만든다는데 딱 이런 경우다. 예전에는 적어도 열 개 이상의 전화번호와 네다섯 개의 주소는 외웠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림도 없다.
어찌어찌하여 잃어버린 전화기를 대신해 다른 폰을 장만하지만, 문제는 정보까지 찾을 수는 없다는 데 있다. 그렇게 잃어버린 연락처들은 결국 그 사람마저 잃어버리게 된다. 그러다가 정보를 알 수 없는 전화번호가 뜨면 긴장하게 되는 것이다.